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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짧지 않은 엄마와의 기록 [1]

쁘에리v 2024. 12. 12.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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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정적인 나의 공간에 기록하는 엄마와의 기억들.

우리 엄마는 1남 4녀 중 장녀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와 함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찍 일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엄마 나이 25세에 아빠를 만나 결혼을 하고 26세에 언니를, 29세에는 나를 낳았다.
내 나이 32세, 엄마는 지금 내 나이에 딸 둘을 둔 엄마였고 한 남자의 아내였다.

엄마는 아빠를 만나 고생을 많이 했다.
아빠의 직업은 안정적이지 않았고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늘 결핍했었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유치원을 다닐 수 있게 되자마자 일을 시작하였고 그렇게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맘 편히 쉬지도 못하고 항상 일을 하였다.

어느덧 언니와 내가 성인이 되어 1인분 몫을 하게 된 현재, 엄마는 정년퇴직을 2년 남겨두고 있다.
올해가 다 저물었으니 이제 1년 남았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

그런 엄마가, 언제나 강하던 엄마가 지난 3월에 갑자기 쓰러졌다.
원인은 뇌출혈.

그날은 3월 1일 금요일이지만 삼일절이라 국가공휴일이었고 엄마와 언니는 쉬는 날,
서비스직을 하는 나는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마침 아빠도 그날은 쉬어서 '으잉 나만 출근이네😭' 하고 집을 나섰다.

그날은 한 시간 연장해서 4시에 마치는 날이었는데 3시쯤 언니랑 엄마가 왔다.
나중에 물어보니 엄마가 머리도 아프고 해서 바람도 쐴 겸 나도 볼 겸 겸사겸사 나왔다고 했다.
저녁으로 먹을 치킨을 사러 갔는데 엄마가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해서
바로 옆에 있는 종합병원 화장실에 가 있으면 우리가 포장해서 가겠다고 하였더니 알겠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15분 정도 지났을까?
포장이 완료되고 나와 언니는 종합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병원 앞에서 5분 정도 더 기다리며 엄마한테 전화를 했는데 받질 않고 나오지도 않아서 내가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엄마가 마스크를 끼지 않아서 병원 화장실을 못 갔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병원에 들어서서 복도를 가로질러 화장실 쪽으로 향하는데 화장실 앞에 준비되어 있던 대기의자에
눈에 익은 핑크색 패딩을 입은 사람이 누워있었다.

엄마였다.

너무 놀라 엄마를 부르며 달려갔다.
엄마가 관자놀이를 마사지하며 눈을 감고 있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기에 병원 진찰을 받기로 하고 접수를 하였고 엄마가 도통 일어서질 못해서
보안 직원분께 휠체어를 부탁하였다.
직원분이 휠체어를 가지고 와주셨으나 엄마 상태를 보시고는 응급실 베드를 가지고 오겠다고 하셨다.

도움을 받고도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는 엄마를 보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점심때 뭘 먹었냐는 나의 질문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답하는 엄마를 보며 '이건 큰 병이다'라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떨리던 내 손이 더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보안직원분과 응급실 간호사님이 침대를 끌고 오셨고 엄마와 그렇게 응급실에 들어갔다.

간호사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혈압을 체크한 간호사가 의사 선생님께 수치를 보고하니
바로 CT 찍으러 가라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의 약간의 다급한 말투와 목소리에 밖에 있던 언니에게 엄마 상태를 이야기하고
아빠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CT결과가 나오자 우리를 부르더니 평소 지병이 있으셨는지 물었고 그런 건 없다 했더니 뇌출혈이 터졌다고 하셨다.

심장이 쿵. 지하 바닥까지 떨어졌다는 느낌이 이런 느낌일까?

다행히 출혈량이 많지 않아서 약으로 응급처치를 진행할 거라 하셨고 재출혈이 생기거나 피가 멈추지 않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상급 병원으로 이동하자고 하셨다.

전공의 파업이 시작되던 터라 우리에게 아는 병원 지인이 있으면 다 연락해서 뇌출혈환자 받아줄 수 있는지 확인을 요청하셨고 다행히도 병원에서 연락했던 상급 병원에서 수용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
아빠는 엄마와 함께 구급차를 타고, 나는 언니와 함께 다른 차를 타고 상급 병원으로 이동하였다.

다행히 상급 병원으로 이동하는 구급차 안에서 엄마는 의식을 차리셨고
상급 병원 응급실 앞에서 만난 엄마는 눈도 뜨고 내가 누구냐는 질문에 딸이라는 대답도 해줬다.

응급실엔 보호자 1인만 함께 들어갈 수 있어 아빠가 동행하였고 언니와 나는 병원 로비 대기 의자에서
기다렸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에게 지병이 있었는데 알고 있었느냐고.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엄마는 '모야모야병'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걸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엄마는 응급실에서 할 수 있는 검사를 모두 마치고 신경외과 중환자실로 이동하였다.

중환자실로 갈 때 엄마와 함께 이동을 하였는데 불행 중 다행인 건지 알 수 없지만
불편한 걸 불편하다고 아픈 건 아프다고 표현을 엄마를 보며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우리 내일 다시 올게' 하자 엄마가 손을 흔들어줬고 그렇게 엄마는 의료진 분들과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엄마 담당 교수님이 나오셔서 엄마 상태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는데
엄마의 뇌출혈 원인은 모야모야병이고
이 모야모야병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서 현재까지는 정확히 밝혀진 게 없다고 하셨다.
(아빠에게 연락을 받고 검색을 해봤는데 모야모야병은 불치병이라고 한다.)
빠르게 응급처치를 하여 손과 발에 마비증세가 보이지 않고 피도 많이 흡수된 상태로 도착하여
수술 대신 약물로 치료를 하자고 하셨다. 그렇게 다른 전달사항까지 듣고 우리는 집으로 향하였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엄마가 없는 집이 낯설고 썰렁해서 눈물이 났다.
하지만 난 다짐했다. 울지 말고 이 상황을 잘 헤쳐나갈 거라고.

조금 추웠던 어느 겨울 날 엄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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