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U♥
짧지만 짧지 않은 엄마와의 기록 [2]
쁘에리v
2024. 12. 1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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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정적인 나의 공간에 기록하는 엄마와의 기억들.
중환자실 면회는 하루에 한 번, 한 사람, 30분 동안 가능하다. 평일엔 아빠와 언니가 주말엔 내가 가서 엄마를 보았다.
두통을 호소하는 엄마가 너무 안쓰러워서 내가 대신 아팠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대신 아팠으면....'
......
보통 자식이 아플 때 부모가 느끼는 마음이라는데 우리 엄마도 그렇게 날 키웠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프다고 하는 엄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손을 잡아주는 것.
그게 다였다.
그렇게 꼬박 10일 하고도 하루를 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은 엄마는 일반병실로 이동하였다.
말이 일반병실이지 이동한 병실은 일반병실 중에서도 조금 더 위중한 환자들이 있는 간호사실 바로 옆 집중치료실이었다.
그 글을 보자 다시 덜컥 겁이 나서 옆에 계시던 간호사분께 여쭤보니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하여 간호사와 제일 가까운 방으로 배정된 거라 하였다.
엄마의 머릿속에 있던 피와 물이 많이 흡수되고 빠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잔여 혈류가 남아있었기에 또 그 잔여 혈류로 인하여 두통을 지속적으로 호소하고 있어서 그렇게 결정된 것 같았다.
환자가 한번 이동하면 많은 사람이 움직인다.
그리고 엄만 주렁주렁 매달고 있던 약과 기계도 많아서 병실 침대로 이동하고 나서도 자리가 정리되기 전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엄마가 일반병실로 이동한 그날엔 아빠가 하루 병원에서 자기로 하였다.
평일날 이동했기에 언니와 나는 불가능하긴 했지만 마음이 좀.. 무거웠다.
아빠에게 저녁거리로 주전부리를 챙겨드리고 언니와 집으로 가면서 간병인을 구하기 시작했다.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대부분 전화를 받아주셨고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오실 수 있는 간병인분을 소개받았다.
그렇게 엄마가 일반병실로 이동한 하루가 마무리되었고 다음날 아빠는 간병인분과 교대를 하였다.
간병인분이 살가운 편은 아니셨지만 교수님이 회진 돌며 하신 말씀이나 엄마의 변화된 부분 또는 엄마에게 필요한 것들 대해서 잘 전달해 주셨다.
처음엔 코로나가 끝나서 병실에서 병문안이 가능한 줄 알고 매일 갔었는데 상호사분이 상주 보호자 1명만 가능하다고 해서 간병인분이 무언갈 사달라고 하지 않는 이상 병원 방문을 줄였고 필요하다는 것을 사서 가더라도 문 앞에서 전달만 해드렸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엄마가 휠체어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일 엄마가 저녁 먹고 난 뒤에 1층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엄마가 조금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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