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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짧지 않은 엄마와의 기록 [6]

쁘에리v 2025. 1. 17.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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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정적인 나의 공간에 기록하는 엄마와의 기억들.

엄마의 퇴원 후 나의 스케줄은 대부분 엄마에게 맞춰 잡히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가족들도 엄마 케어를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의 적극성은 보이지 않았고 엄마와 관련된 일들은 모두 내 위주로 돌아갔다.

난 오후에 좀 일찍(해가 떠 있을 때) 퇴근을 하는데 집에 가면 항상 엄마와 다시 나와서 산책을 했다.
5월의 남은 하루하루들은 집과 멀지 않은 곳에서 해를 보고 바람을 쐬고 자연을 느꼈다.
가끔은 퇴근 후 그냥 쉬고 싶었지만 나조차도 나가지 않으면 엄마는 하루종일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내가 좀 더 피곤하고 말지 뭐!' 하는 생각으로 매일 나갔다.

내가 이렇게 밖으로 나가는 것에 집착을 하게 된 이유는 엄마의 동공에서 삶에 대한 애정을 느끼지 못해서였을까?
'엄마의 눈이 텅 비어있다.'라는 느낌을 꽤 오랜 시간 느꼈다. 무서웠다. 엄마가 삶을 포기해 버리고 나를 떠날까 봐.

그리고 아빠와 하루종일 붙어있는 게 꽤 스트레스인 눈치였다.
엄마의 퇴원 후 아빠가 하던 일도 마무리되어 엄마를 케어한다는 이유로 아빠가 휴식기를 가졌는데
집안일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아빠가 하는 모든 행동들이 엄마 마음에 썩 들지 않았던 것이다.
또 엄마가 회복 중이라는 이유로 엄마에게는 최대한 일을 시키지 않으려고 했었다.
이 부분은 나도 동의하는 바지만 그에 비해 아빠의 케어는 엄마를 만족시키지 못하였다.
아마 아빠가 원하는 부분에서만 케어를 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엄마가 삶에 대한 즐거움을 찾도록 그리고 아빠와 떨어져 잠시나마 기분 전환을 하도록 자연과 가까운 카페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엄마와 맑은 날이면 차를 몰고 어디로든 나갔다.
엄마는 강을 좋아했다. 잔잔한 물결을 보고 있는 게 좋다고 했다.
내가 잔잔한 호수를 좋아하는 이유와 동일했다. 난 엄마 딸이 확실하다.

맑은 날이 지속되다가 비가 내린 어느 날.
멀리 나가자니 엄마가 싫다고 거절하고 어딜 갈까 고민하던 중 집과 가까운 도서관에 가자고 했더니 엄마도 좋다며 따라나섰다.
도서관 뒤에 바로 산이 있다 보니 꽤나 경사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걸어가는 건 무리라 생각되어 차를 가지고 갔다.
집에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를 엄마와 처음 왔다는 사실에 약간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에게 읽고 싶은 책이 무엇인지 물었는데 성인용 책은 글이 작고 많아서 지루할 것 같다고 했다.
나도 책 읽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아서 초등학생용 책들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마음에 드는 제목의 책을 골라 펼쳐서 글씨 크기가 크고 그림이 있으면 통과,
글씨 크기가 작고 그림이 없으면 패스를 해가며 열심히 책을 골라 소파에 앉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바깥을 보니 조금 어두워진 상태라 엄마에게 책을 빌려서 집에 가자고 했더니 엄마도 선뜻 책을 빌려가자고 하는 게 아닌가..
아마도 TV로 보는 영상들은 아빠 맞춤이라 엄마는 별로 재미가 없었던 듯했다.

엄마가 아프고 나서야 나는 엄마의 취미인 듯 취미가 아닌 산책과 독서를 공유했다.
맑은 날이면 책을 들고 생태공원이나 자연과 가까운 카페로 나가고
책을 다 읽은 날에는 도서관에 가서 반납하고 또 새로운 책들을 빌리며 엄마와 계속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5월이 잘 마무리되고 조금 더 더운 6월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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