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하고 정적인 나의 공간에 기록하는 엄마와의 기록들.초여름인데 꽤나 더운 나날들이 지속되었다.덥지만 맑은 날들을 즐기며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엄마와 함께 드라이브를 다녔다.어느 순간, 엄마는 나의 퇴근 시간만 기다리기 시작했다.엄마가 나가고 싶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외출복을 입고 있다거나내가 방에 잠시 쉬고 있으면 수시로 방문을 열어봤다.이런 표현이 있는 날은 엄마에게 낮에 어디 나갔다 왔냐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집에만 있었다고 했다.나는 아빠에게 '선선한 아침에 나가서 산책하고 오지~'라며 약간의 핀잔을 주었지만 아빠는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앞선 글에 말했듯이 아빠는 본인이 원하는 부분에서만 케어를 했다. 예를 들면 식사정도..?엄마의 의존도가 나에게 집중되다 보니 나도 조금씩 피로해지기..

조용하고 정적인 나의 공간에 기록하는 엄마와의 기억들.엄마의 퇴원 후 나의 스케줄은 대부분 엄마에게 맞춰 잡히기 시작했다.물론 다른 가족들도 엄마 케어를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의 적극성은 보이지 않았고 엄마와 관련된 일들은 모두 내 위주로 돌아갔다.난 오후에 좀 일찍(해가 떠 있을 때) 퇴근을 하는데 집에 가면 항상 엄마와 다시 나와서 산책을 했다.5월의 남은 하루하루들은 집과 멀지 않은 곳에서 해를 보고 바람을 쐬고 자연을 느꼈다.가끔은 퇴근 후 그냥 쉬고 싶었지만 나조차도 나가지 않으면 엄마는 하루종일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내가 좀 더 피곤하고 말지 뭐!' 하는 생각으로 매일 나갔다.내가 이렇게 밖으로 나가는 것에 집착을 하게 된 이유는 엄마의 동공에서 삶에 대한 애정을 느끼지 못해..

조용하고 정적인 나의 공간에 기록하는 엄마와의 기억들.엄마의 퇴원을 위해 병원으로 가던 그날의 나는 세상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설레었다.드디어 엄마가 집으로 오다니!처음 엄마가 쓰러지고 막내 이모랑 통화할 때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이모, 눈 깜짝하면 빨리 5월이나 6월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때 되면 엄마가 퇴원할 테니까..!"그 말이 실제로 또 이루어져서 얼마나 기쁜지..병원에 도착하여 모든 정산을 끝내고 엄마를 모시러 병실로 올라갔다.같은 병실에 계시던 모든 분들이 엄마에게 축하를 전했고 엄마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마지막으로 담당선생님을 만나고 드디어 병원을 벗어났다.생각보다 더운 날씨에 택시를 탈까 잠깐 고민했지만 버스를 타자는 엄마 말에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했다.병원에 입원중일..

조용하고 정적인 나의 공간에 기록하는 엄마와의 기억들.엄마가 재활 병원에 입원했던 기간에 어버이날이 있었는데 어버이날을 맞춰 전주 주말에 외출 신청을 했었다.아빠 눈치를 보느라 친정 식구들을 잘 못 만나던 엄마를 위해 준비한 효도의 시간이랄까..?운전을 하게 되고 딱히 좋다고 느끼지 못했던 내가 유일하게 '이건 좋다' 하고 느낀 건 엄마랑 나가고 싶을 때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거였다.[2024년 5월 4일]나는 엄마와 외할머니를 모시고 기장으로 갔다.예전에 남자친구랑 계획 없이 들린 장어덮밥집이었는데 맛도 좋은 데다 친절한 사장님 덕분에 마지막까지 기분 좋게 식사를 했던 를 가기 위해서였다.'여기 엄마랑 외할머니 모시고 오고 싶다!'라는 생각이 식사 내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식당이고 내년 어버이날에 ..

조용하고 정적인 나의 공간에 기록하는 엄마와의 기억들.엄마는 아빠와 언니 그리고 나를 포함한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성함, 3명의 여동생들과 막내 남동생 이름까지 잘 맞추었다.그런데 나를 딸로 보다가도 몇 분 지나 엄마의 여동생으로 보기도 하였고현재를 2024년이 아니라 엄마가 태어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시대 그쯤으로 이야기했다.처음 뇌출혈이 터진 날 뇌출혈에 대해 검색을 했었는데 벌써 9개월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큰 수술이나 뇌출혈, 뇌졸중 등의 큰 병을 앓고 나면 섬망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그 시기가 섬망이 나타난 시기가 아니었을까?(혼자 짐작하는) 섬망이 있던 시기, 기억에 남는 건 엄마가 내 나이를 24살이라고 답했던 날이다.엄마가 휠체어를 타고 1층에 내..

조용하고 정적인 나의 공간에 기록하는 엄마와의 기억들.중환자실 면회는 하루에 한 번, 한 사람, 30분 동안 가능하다. 평일엔 아빠와 언니가 주말엔 내가 가서 엄마를 보았다.두통을 호소하는 엄마가 너무 안쓰러워서 내가 대신 아팠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대신 아팠으면....'......보통 자식이 아플 때 부모가 느끼는 마음이라는데 우리 엄마도 그렇게 날 키웠겠지..?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프다고 하는 엄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손을 잡아주는 것.그게 다였다.그렇게 꼬박 10일 하고도 하루를 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은 엄마는 일반병실로 이동하였다.말이 일반병실이지 이동한 병실은 일반병실 중에서도 조금 더 위중한 환자들이 있는 간호사실 바로 옆 집중치료실이었다.그 글을 보자 다시 덜컥 겁이 나서 옆에..

조용하고 정적인 나의 공간에 기록하는 엄마와의 기억들.우리 엄마는 1남 4녀 중 장녀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엄마의 엄마인 할머니와 함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찍 일을 시작하였다.그리고 엄마 나이 25세에 아빠를 만나 결혼을 하고 26세에 언니를, 29세에는 나를 낳았다.내 나이 32세, 엄마는 지금 내 나이에 딸 둘을 둔 엄마였고 한 남자의 아내였다.엄마는 아빠를 만나 고생을 많이 했다.아빠의 직업은 안정적이지 않았고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늘 결핍했었다.그래서 엄마는 내가 유치원을 다닐 수 있게 되자마자 일을 시작하였고 그렇게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맘 편히 쉬지도 못하고 항상 일을 하였다.어느덧 언니와 내가 성인이 되어 1인분 몫을 하게 된 현재, 엄마는 정년퇴직을 2년 남겨두고 있다.올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