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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정적인 나의 공간에 기록하는 엄마와의 기억들.
엄마는 아빠와 언니 그리고 나를 포함한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성함, 3명의 여동생들과 막내 남동생 이름까지 잘 맞추었다.
그런데 나를 딸로 보다가도 몇 분 지나 엄마의 여동생으로 보기도 하였고
현재를 2024년이 아니라 엄마가 태어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시대 그쯤으로 이야기했다.
처음 뇌출혈이 터진 날 뇌출혈에 대해 검색을 했었는데 벌써 9개월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큰 수술이나 뇌출혈, 뇌졸중 등의 큰 병을 앓고 나면 섬망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그 시기가 섬망이 나타난 시기가 아니었을까?
(혼자 짐작하는) 섬망이 있던 시기, 기억에 남는 건 엄마가 내 나이를 24살이라고 답했던 날이다.
엄마가 휠체어를 타고 1층에 내려올 수 있었을 때 나는 병원으로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다.
엄마 컨디션에 따라 짧게는 30분, 길게는 한 시간이 넘도록 엄마와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날은 엄마에게 언니와 내 나이를 물었다.
언니 나이는 비슷하게 잘 맞췄는데 내 나이를 지금보다 8년을 어리게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내가 다시 되물었다.
"엄마 내 나이가 몇 살이라고~?"
"24살~ 아니가?"
그렇다.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 8살이나 어린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고~ 24살이면 투잡을 할 때라 엄마랑 시간도 많이 못 보냈는데~ 그때의 나를 기억해 주는 거야? 나 아직 그렇게 어려 보이는 거야? (웃음)"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울먹이며 대답했다.
"니가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엄마 말에 울컥, 눈물이 차오른 건 표현이 별로 없는 엄마가 나의 고생을 알아줘서였을까?
나는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고1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고3 2학기를 제외하고 17살부터 23살 대학교 4학년때까지 한해도 빠지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고
24살, 대학 졸업 후 1년 동안 투잡을 하였는데 엄마는 그때의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엄마가 미안해서..."
말을 이어나가는 엄마의 말을 끊어내고 내가 돈 버는 게 좋아서 일한 건데 엄마가 왜 미안하냐며
그런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엄마 덕에 나는 이렇게 잘 자랐다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다독였다.
흐르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지나고 4월의 어느 날 교수님이 이제 퇴원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집에 엄마를 혼자 둘 수 없었던 우리 가족은 인지와 기억 부분, 신체 운동 부분의 재활을 위해 재활병원으로 이동하자
결정하였고 엄마 또한 그 상황을 잘 받아들였다.
그렇게 집 가까운 재활병원에 엄마가 다시 입원을 하였고, 나는 하루에 2번 엄마를 보러 갔다.
재활 병원에서는 한 달 남짓한 시간을 보냈는데, 처음 재활 병원에 입원할 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상주 보호자를 요청하셔서 간병인을 구했었고 2주 정도 흐르고 나니 간병인이 없어도 될 것 같다는 판단에
병원에서 요청한 서류를 작성하고 엄마 혼자 생활을 했었다. 그 사이 엄마는 병원 허락 하에 외출과 외박을 하며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5월의 중순, 퇴원하면 어떻겠냐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이 있었고 5월 20일 화창한 월요일,
엄마는 퇴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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