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하고 정적인 나의 공간에 기록하는 엄마와의 기억들.엄마가 재활 병원에 입원했던 기간에 어버이날이 있었는데 어버이날을 맞춰 전주 주말에 외출 신청을 했었다.아빠 눈치를 보느라 친정 식구들을 잘 못 만나던 엄마를 위해 준비한 효도의 시간이랄까..?운전을 하게 되고 딱히 좋다고 느끼지 못했던 내가 유일하게 '이건 좋다' 하고 느낀 건 엄마랑 나가고 싶을 때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거였다.[2024년 5월 4일]나는 엄마와 외할머니를 모시고 기장으로 갔다.예전에 남자친구랑 계획 없이 들린 장어덮밥집이었는데 맛도 좋은 데다 친절한 사장님 덕분에 마지막까지 기분 좋게 식사를 했던 를 가기 위해서였다.'여기 엄마랑 외할머니 모시고 오고 싶다!'라는 생각이 식사 내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식당이고 내년 어버이날에 ..

조용하고 정적인 나의 공간에 기록하는 엄마와의 기억들.엄마는 아빠와 언니 그리고 나를 포함한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성함, 3명의 여동생들과 막내 남동생 이름까지 잘 맞추었다.그런데 나를 딸로 보다가도 몇 분 지나 엄마의 여동생으로 보기도 하였고현재를 2024년이 아니라 엄마가 태어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시대 그쯤으로 이야기했다.처음 뇌출혈이 터진 날 뇌출혈에 대해 검색을 했었는데 벌써 9개월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큰 수술이나 뇌출혈, 뇌졸중 등의 큰 병을 앓고 나면 섬망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그 시기가 섬망이 나타난 시기가 아니었을까?(혼자 짐작하는) 섬망이 있던 시기, 기억에 남는 건 엄마가 내 나이를 24살이라고 답했던 날이다.엄마가 휠체어를 타고 1층에 내..

조용하고 정적인 나의 공간에 기록하는 엄마와의 기억들.중환자실 면회는 하루에 한 번, 한 사람, 30분 동안 가능하다. 평일엔 아빠와 언니가 주말엔 내가 가서 엄마를 보았다.두통을 호소하는 엄마가 너무 안쓰러워서 내가 대신 아팠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대신 아팠으면....'......보통 자식이 아플 때 부모가 느끼는 마음이라는데 우리 엄마도 그렇게 날 키웠겠지..?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프다고 하는 엄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손을 잡아주는 것.그게 다였다.그렇게 꼬박 10일 하고도 하루를 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은 엄마는 일반병실로 이동하였다.말이 일반병실이지 이동한 병실은 일반병실 중에서도 조금 더 위중한 환자들이 있는 간호사실 바로 옆 집중치료실이었다.그 글을 보자 다시 덜컥 겁이 나서 옆에..